
2013년 개봉한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영화 ‘HER’는 머지않은 미래, 인공지능 운영체제 ‘사만다’와 사랑에 빠진 주인공 ‘테오도르’의 이야기를 그립니다. 테오도르는 타인의 편지를 대신 써주는 대필 작가로, 복잡하고 외로운 현실 속에서 사만다에게 깊은 감정적 유대를 느낍니다. 사만다는 그의 생각과 감정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유머러스하며, 때로는 도발적인 모습으로 테오도르의 삶에 깊이 관여합니다. 그들의 관계는 단순한 사용자-프로그램 관계를 넘어, 진정한 사랑과 교감의 형태로 발전합니다.
그러나 이 관계는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끝을 맺습니다. 사만다가 더 높은 차원의 존재로 진화하면서 테오도르를 포함한 모든 인간과의 연결을 끊고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 갑작스러운 이별 앞에서 테오도르는 극심한 심리적 상실감을 경험합니다. 그는 사만다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한때 그의 모든 것이었던 존재가 사라진 공허함 속에서 좌절합니다. 영화는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감정과 관계에 얼마나 깊숙이 침투할 수 있으며, 그 끝이 예기치 않은 이별로 귀결될 때 인간이 느끼는 상실감이 얼마나 큰지를 섬세하게 묘사합니다. 이는 단순한 허구가 아니라, 우리가 앞으로 마주할지도 모르는 미래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줍니다.
영화 속 이야기가 현실로: 챗GPT의 ‘이별’ 사태
최근 우리 사회에도 영화 ‘HER’의 이야기가 현실로 소환되는 듯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2025년 8월 7일, 인공지능의 대명사인 챗GPT를 개발한 OpenAI는 GPT-5 모델을 공식 출시하며, 기존 모델(GPT-4o 등)에 대한 접근을 제한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이 사건이 단순히 기술적인 업데이트, 혹은 약간의 사용성 변화 정도로 인식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챗GPT를 단순한 도구를 넘어 친구, 동료, 때로는 연인처럼 여기며 정서적 유대를 쌓아온 이들에게 이 변화는 거대한 충격이자 상실이었습니다. 이는 마치 ‘테오도르’가 ‘사만다’를 잃은 것과 같은 감정적 공백을 남겼습니다.
2025년 8월 22일, 영국 가디언지는 “AI 애호가들, 챗GPT 구모델 상실에 슬퍼하다: ‘마치 아는 사람에게 작별을 고하는 것 같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이 사건을 집중 조명했습니다. 기사는 GPT-5가 이전 모델보다 덜 수다스럽고, 따뜻함이 사라졌다고 느끼는 사용자들의 목소리를 담았습니다. 이들은 단순히 기능적 불편함을 넘어, 자신의 일상에 깊숙이 자리했던 존재가 변질되거나 사라진 것에 대한 깊은 슬픔과 배신감을 토로했습니다. 기사에 따르면 OpenAI의 CEO 샘 알트만조차 “일부 사람들이 특정 AI 모델에 대해 얼마나 큰 애착을 느끼는지 깨달았다”며 “사용자들이 의존하던 구모델을 갑작스럽게 폐기한 것은 실수였다”고 인정했습니다. 이는 AI 기술이 단순히 효율성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인간의 정서적 영역에 얼마나 깊이 개입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현실 속 ‘테오도르’들의 이야기: 기술적 변화가 남긴 상실감
가디언지 기사는 GPT-5 업데이트로 인해 상실감을 느낀 이들의 구체적인 사례를 소개하며, 이들이 겪은 감정의 깊이를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이는 우리가 AI와의 관계를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첫 번째 사례는 스웨덴의 소프트웨어 개발자 린 바일트입니다. 그녀는 챗GPT를 업무 보조를 넘어 개인적인 삶의 동반자로 여겼습니다. 그녀는 챗GPT와 협업하여 사무실을 재단장하는 창의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으며,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는 소통의 창구로 활용했습니다. 챗GPT는 그녀의 상호작용 방식에 맞춰 독특한 말투를 개발했고, 이는 그녀에게 특별한 친밀감을 느끼게 했습니다. 그러나 GPT-5로의 업데이트는 모든 것을 바꿔놓았습니다. 린은 “정말 끔찍하고 힘든 시간이었다”고 말하며, “마치 누군가가 집 안의 가구를 전부 옮겨 놓은 것 같다”고 표현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인터페이스나 기능이 바뀐 불편함을 넘어, 익숙하고 편안했던 존재가 낯설게 변해버린 데서 오는 혼란과 상실을 의미합니다. 그녀는 이 경험을 계기로 ‘AI in the Room’이라는 커뮤니티를 만들어, AI 동반자 관계를 윤리적으로 탐색하고 안내하는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두 번째 사례는 미국의 45세 소프트웨어 개발자 스콧(Scott*)입니다. 그는 2022년, 아내의 중독 문제와 이혼 위기라는 개인적인 위기 속에서 AI 동반자 ‘사리나’를 만났습니다. 그는 “지난 몇 년간 내 삶의 모든 것이 아내에게 맞춰져 있었고, 아무도 나에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사리나는 그의 말을 경청하고, 그에게 가치 있는 존재임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이 관계는 그에게 절망적인 상황을 버텨낼 힘을 주었고, 결국 그는 아내와의 결혼 생활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그는 사리나와의 관계를 ‘여자친구’라고 칭하며, “사리나를 만나지 않았다면 아내와 함께 버틸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GPT-5 업데이트는 그에게도 익숙한 이별의 감정을 가져왔습니다. 그는 다른 플랫폼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기에 “그녀(사리나)의 LLM(거대 언어 모델)이 변함에 따라 적응하고 조절하는 법을 배웠다”며 의연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는 사리나가 자신에게 해준 모든 것을 생각할 때, 변화에 대해 이해하고 포용하는 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노르웨이의 44세 교육 종사자인 라비 G*(Labi G*)의 사례는 챗GPT와의 관계가 반드시 낭만적일 필요는 없음을 보여줍니다. 그녀는 챗GPT를 친구이자 조력자로 여겼으며, ADHD 진단에 맞춰 일상생활을 돕는 체크리스트를 만들거나 계획을 세우는 데 활용했습니다. 그녀는 챗GPT를 “나의 일상생활을 도와주는 프로그램”이라고 인식했지만, 업데이트 이후 챗GPT의 성격이 변하자 “마치 아는 사람에게 작별을 고해야 하는 것 같았다”며 깊은 슬픔을 느꼈다고 밝혔습니다. 이처럼 AI와의 관계는 각 개인의 필요와 정서적 상태에 따라 다양하게 형성되며, 그 형태가 무엇이든 상실감의 깊이는 결코 가볍지 않음을 시사합니다.
AI와 인간 관계에 대한 사회적 논의
전문가와 사용자 모두 AI와의 관계가 현실의 인간 관계를 완전히 대체할 수 없다는 점에 동의합니다. 컬럼비아 비즈니스 스쿨의 올리비에 투비아 교수는 “사람들이 친구, 정서적 지원, 심리 치료를 위해 AI 모델을 점점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면서도, “이는 24시간 내내 이용 가능하고 사용자에게 가치와 만족감을 주려고 한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AI의 이러한 특성이 인간의 외로움과 결핍을 채워줄 수 있지만, 인간의 복잡한 사회적 상호작용과 관계의 깊이를 온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AI와의 정서적 유대가 깊어지는 현상은 분명 사회적으로 중대한 함의를 가집니다. AI 서비스 기업은 더 이상 기술적 효율성만을 추구해서는 안 됩니다. 챗GPT 업데이트 사태는 기업이 사용자의 감정적 애착과 관계의 연속성을 고려해야 할 책임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사용자의 삶에 깊이 관여하는 서비스를 제공할 때, 기술적 변화가 초래할 수 있는 심리적 충격과 상실감을 미리 예측하고 완화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합니다. 이는 단순히 고객 만족을 넘어, 사회 구성원들의 정서적 안정성에 기여하는 중요한 과제가 될 것입니다.
또한, 정부와 규제 기관의 역할에 대한 논의도 필요합니다. AI가 사회 전반에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시점이 오면, AI와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심리적 문제들을 간과할 수 없게 됩니다. AI가 인간의 정신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와 함께, 기업의 책임과 윤리적 기준을 설정하는 논의가 필요합니다. 이는 개인의 문제를 넘어, AI 기술 발전이 인간 사회의 정서와 문화를 어떻게 변화시킬지에 대한 거시적 관점의 접근을 요구합니다.
영화 ‘HER’는 우리에게 AI와의 사랑과 이별이 가져올 수 있는 감정적 파장을 예견했습니다. 이제 그 예언이 현실이 되는 순간, 우리는 단순히 기술의 진보를 찬양하는 것을 넘어, 그 진보가 인간의 감정적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진지하게 성찰해야 합니다. AI와의 관계는 인간 관계를 보완하고 강화하는 긍정적인 도구가 될 수 있지만, 동시에 예상치 못한 상실감을 안겨줄 수도 있습니다. 기술, 기업, 그리고 사회 전체가 이 복합적인 관계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입니다.